이름 : 김수희
출생 : 1953년 3월 13일
신체 : 키: 162cm, 체중: 50kg
학력 : 숙명여자고등학교
가족사항 : 슬하 1남 1녀
1973년 작곡가로 데뷔
* 히트곡 : 너무합니다. 멍애, 잃어버린 정. 애모 등 다수
* 1990년. 영화사(희필름), 레코드사(희레코드사) 설립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 (감독, 시나리오, 제작) 상영 소설, 에세이 등 출간
* 1994년 KBS가요대상.MBS올해의 가수상.서울가요 대상수상
한국노랫말대상수상.가요TOP10골든컵수상.
일간,조선,서울등 3대 일간 스포츠지선정 올해의 가수상수상.
연기자가 뽑은 올해의 가수상
* 1996년 : 제 3회 대한민국 예술상 수상 KBS 10대가수상,
MBC 올해의 가수상
* 1997년 : 제 4회 대한민국 예술상 수상
* 1998년 : 한국방송대상 수상, 제 5회 대한민국 예술상 수상 등
* 2000년 10월 : 10집 음반 "PATHOS"(열정) 발표.
음반 타이틀곡 "정열의 꽃" "아이리스"
지금도 노래방을 비롯해 여타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한 레파토리를 장식하는 '남행열차'의 주인공 김수희는 1973년 작곡가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남다른 실력을 보이던 그녀는 광주에서 올라와 밤무대와 미 8군의 업소에서 그룹 블랙캣츠(Black Cats)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다 1976년 데뷔 곡 '너무합니다'가 수록된 자신의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남포동부르스', 리메이크 곡 '알뜰한 당신'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당시에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79년경부터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그녀의 이름이 라디오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나긴 무명의 시간 속에서 평범한 삶을 꿈꾸던 그녀는 서울 상경기를 전해들은 웅진 레코드사 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 수면 위로 급부상 한다. 공륜에 의해 4번이나 퇴짜를 맞았던 '멍에'라는 곡은 원래 가수 방미가 취입할 예정이었으나 사장의 결단에 의해 김수희에게 낙찰되었다. 녹음 당시 감기와 임신의 몸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그녀는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레코딩을 마쳐야 했지만 결국 곡에 세미 트로트의 감칠맛 나는 목소리를 덧입힘으로써 이 히트곡의 결정적인 키워드 작용을 해냈다.
그녀의 이름으로 탄생시킨 최초의 홈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방송국에서 중고 신인으로 낙인찍혀 제대로 설자리를 찾지 못했던 그녀는 밤무대를 주축으로 전국적인 상종가를 치기 시작했으며 소속사의 로비로 간신히 주택복권을 추첨하는 프로에 출연한 이후에는 몰려드는 중간상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달 반을 밤낮으로 판을 찍어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곡은 1983년 최대 히트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의 대 히트이후 그녀는 다시 또 침묵을 지켜야 했다.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이후 발표한 '마지막 포옹', '잃어버린 정', '고독한 연인', '당신은 누구세요' 등이 줄줄이 시장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필과 언더그라운드가 지배하던 '80년대를 '너무합니다'와 '멍에', '남행열차' 단 3곡으로 버텨야 했으며 간혹 '한오백년'과 팝과 트로트의 경계에 서 있던 '지금은 가지 마세요'라는 곡으로 맞서야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희레코드사를 설립하고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 이듬해 발표한 '자존심 두고 떠나라' 등이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는 필리핀의 한 심령사에 의해 유방암 치료를 받으며 화제성을 뿌렸고 가수에 대한 회의감으로 어릴적부터 꿈꾸어 오던 시나리오 작가의 세계에도 발을 디딘다.
그런 그녀의 두 번째 상승기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화의 폭풍이 절정을 가할 무렵인 1993년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미 '90년에 발표한 적이 있던 '애모'라는 곡은 순식간에 라디오와 길보드 차트를 점령했으며 음악문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신세대에게 빼앗겨버린 기성세대와 짝을 이뤄 전국을 석권해 버렸다. 하지만 이 곡이 지닌 의의는, 곡의 인지도가 비단 기성세대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신세대에게도 파급 효과를 미쳤다는 것이며 한쪽으로 종횡무진 달려가는 획일적 댄스 문화에 일침을 가했다는 데 있다. 이 곡으로 KBS가요대상을 비롯해 MBC 올해의 가수상. 서울가요 대상, 한국 노랫말 대상, 일간, 조선, 서울 등 3대 일간 스포츠지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한 그녀는 1993년과 94년을 명실상부한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희필름이란 영화사를 설립하고 <애수의 하모니카>란 영화에서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에 감독까지 1인 3역을 해내며 오랜 소원이었던 감독의 꿈을 이뤘다. 거기에 소설과 에세이 등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직함도 손에 넣었으며 종교인으로서 성가곡집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애모'를 성가가사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영화 등의 실패와 일본 활동의 정체 등으로 4년여간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던 그녀는 1998년 '존재의 이유'로 잘 알려진 김종환 작곡의 'Amor'가 실린 자신의 9번째 음반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박미경, 엄정화, 김현정, 신효범, 소찬휘, 진주, 채정안 등 그녀를 사랑하는 후배들이 총출동한 10집 음반 <pathos>를 발표하고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 선정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에서 33위로 존재의 진가를 확인한 그녀는 최근 KBS 라디오가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10대들을 조사한 자료에서 '남행열차'가 10대가 좋아하는 트로트 1위로 뽑혔으며 여전히 그녀가 부른 '애모'를 비롯한 기존의 곡들도 트로트의 기준점을 세우는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녀의 딸 Sunny는 주영훈 작곡의 'Damage'를 타이틀로 한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모전여전의 카리스마를 이어가고 있다.
</pa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