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진미령
· 신체 : 160cm/40kg
· 학력 : 서울 화교고등학교
· 직업 : 가수
· 데뷔 : 1975년 영사운드 멤버로 데뷔
‘헐렁한 남자’를 잡고사는‘꼭 조이는 여자’진미령
결혼생활에는 도통 맞지 않을 것 같은 남자, 여자 속을 푹푹 썩일 것처럼 보이는 괴짜 전유성과 결혼한 진미령.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 부부는 결혼하고부터 돈도 더 잘 벌고, 각자 활동도 더 열심히 하고, 유럽 배낭여행과 레포츠를 즐기는 등 더 신나고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왔다.
대체 어떤 식으로 괴짜 남편을 ‘훈련’시키비게 그렇게 성공적으로 결혼생활을 이끌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미령부부의 결혼생활과 살림살이,자식교육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헐렁한 남자, 꽉 조이는 여자.’
한 출판사의 편집자는 전유성 진미령 부부를 이렇게 표현했다.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맞아”.
어울리는 구석은 없으면서 어쩐지 궁합이 좋을 것같은 부부. 툴툴거리며 다투지만 계속 붙어다니는 오누이같은 부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결혼 이후 이들의 모습을 ‘보기좋다’고 말한다.
그리곤 덧붙인다. 그러 게 다 ‘임자’가 따로 있는 거라고. 전유성이라는 ‘강적’을 일상의 주파수 속으로 끌어당겨 컨트롤하는, 만만찮은 그 작업을 마치 ‘귀신잡는 방위’ 처럼 진미령은 척척 해내고 있다.
확실히 전유성은 변했다. 신수도 훤해지고 사람이 건실해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물론 전유성은 예전의 그 전유성이지만 최소한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세상 속으로 더 깊게 들어온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 의해 변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즐겁다.
그러나 조금 더 속으로 들어가보면 변한 건 남자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전유성이 장가를 잘가거나 진미령이 유능한 조련사여서가 아니라, 이들이 결혼생활이라는 그 복잡다단한 뫼비우스의 띠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데는 이미 프로라는 사실을.
불간섭, 혹은 혼자 있을 권리
언뜻 들으면 옳은 소리만 하는 남자, 하루 세끼 밥을 꼭 챙겨먹는 남자, 개그계의 디오니소스. 그런 전유성을 꽉 ‘잡고사는’ 진미령은 대체 어떤 여자일까.
“애같죠 뭐. 내가 볼 땐 애기예요. 작은 건 몰라도 큰 일엔 계산, 도박을 전혀 못합니다.”
전유성은 아내의 투명함을 알아본다. 상대의 투명함을 볼 수 있다는 건 자신 역시 그것을 비출 거울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는 말도 된다. 그 말대로 진미령은 ‘작은 일엔 소심하고 큰 일은 저질러버리는’ 형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진미령 역시 씩씩하되 여린 ‘속’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주기보다는 상처받는 쪽에 들 터이다.
전유성은 아내가 밥먹고 글씨 쓸 땐 오른 손을, 칼질이나 가위질 할 땐 왼손을 쓴다는 걸 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어를 구사하고 아무 음식이나 잘 먹으니 ‘혓바닥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진 셈이고 손바닥의 세계화도 일찌감치 이룬 ‘경쟁력있는’ 여자를 ‘데리고’ 산다.
지난 5년 동안 이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왔다. ‘처음엔 잔소리도 어지간히 하고 사사건건 부딪치기도 했지만 물이란 게 바위를 만나면 굽이치기도 하고 휘돌아가기도 하는 이치를 체득했다’고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옷은 꼭 개켜놔야 자고 자다가 이불이 흐트러지면 일어나 제대로 딱 펴고서야 다시 잠이 드는 깔끔한 진씨의 성격은 이제 조금은 구김이 간, 그래서 입기에 부담없고 편한 옷쯤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전유성 역시 마찬가지. 아침 7시면 세상 없어도 눈을 뜨는 자신과는 달리 밤무대 일로 오전은 무조건 푹 자야하는 진미령의 잠 습관이 처음엔 맞지 않지만 그 정도 사이클 차이는 접어두고 산 지 오래다. 이른 아침 누군가 전화라도 걸라치면 그는 ‘미령이가 지금 곤해서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고 말한다. 그 자신 담배를 끊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아내에게는 끊으라 말라 얘기하지 않는다.
서로 기본만 지켜준다면 자질구레한 거 ‘터치’하지 않고 토닥거리지 않겠다는 게 이들 부부의 원칙.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권리는 이들의 결혼전제이기도 했다. 하루 온종일 자기방에서 컴퓨터를 들이파건 책을 보건 이들은 ‘정말로’ 상관하지 않는다. 각자 배고프면 부엌을 찾고 또 각기 잠을 잔다.
손끝이 매운 여자
진미령의 매운 손끝에 대한 소문은 방송가에 잘 알려져있다. 타고난 ‘주부기질’은 물론이지만 특히 혀끝과 손끝의 감각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불시에 집을 방문해도 냉장고에서 기본 다섯가지에서 열가지의 밑반찬을 확인할 수 있다.
“할머니 어머니가 모두 개성분이었고 아버지도 중국음식을 좋아하시는 미식가였어요. 개성사람들 손맛, 입맛은 맛깔스럽기로 유명하죠. 새우젓으로 간을 한 개성식 호박무침이나 오이장아찌같은 음식은 기본이죠.”
어디를 가더라도 전유성은 볼거리를 찾느라, 진미령은 먹거리를 찾느라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일식집 ‘향진’이나 중국집 ‘외백’ 오장동 ‘흥남집’같은 식당은 어린 시절부터 식구들과 함께 들락거린 곳. 냉면불고기는 우래옥이나 한일관, 닭곰탕은 중구청 옆 버드나무집… 하는 식으로 오래된 국내의 맛집, 별미집이 그의 머리 속에 차곡차곡 입력돼 있다.
특기할 것은 한번 점 찍은 음식은 만드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 직접 요리한다는 것. 한두번 맛만 봐도 재료와 요리법이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불러오기’가 되고 좀 복잡한 건 주방장에게 물어 입력한다. 그의 집 싱크대 한 귀퉁이에는 이런 식으로 모인 요리메모가 두툼하게 쌓여 있는데, 이런 묵은 노트들을 모두 모아 만든 살림살이 책을 다음달 쯤 선보일 참이다.
이젠 남편도 ‘먹는 일’에 차츰 전염돼가고 있다. 토화젓, 어리굴젓, 제첩국, 꼬막비빔밥 등은 이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들. 지난해 유럽여행에서도 이들은 각 지역의 명물 음식이나 전통음식을 기를 쓰고 찾아가 먹었다.
찰츠부르크의 돼지고기 커틀릿, 독일의 족발, 프랑스의 케밥, 헝가리의 굴라쉬수프, 스페인의 새끼돼지구이, 노르웨이의 정어리 초절임과 바이킹 카레 등 수십가지의 토속음식 가운데 특히 인상에 남는 건 스위스에서 먹은 퐁뒤. 조리법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언제고 직접 해먹을 요량으로 조리기구 일체를 사가지고 왔다고.
요즘 두사람은 인사동 밥집 ‘밥 이야기’의 ‘깍빔밥’을 새로 개발,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뜨끈뜨끈한 밥에다 아주 잘게 썰어 달큼하게 익힌 개성식 깍두기에 참기름을 둘러 비벼 먹는 감칠맛 나는 이 밥은 개성출신 아주머니가 운영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드나들고 있는 중.
소일삼아 시작한 노래인생
목포 수원 강릉시장을 거쳐 이북 5도 함경도지사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 진씨의 아버지는 지금도 한미친선골프협회 회장직을 20년 넘게 역임해오고 있는 골프애호가. 지금까지 한번도 ‘변변히’ 아파본 경험이 없는 진씨의 건강은 일흔여섯 고령에도 매일 필드로 나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영지와 선식, 마죽 등을 상복하는 등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배우는 게 많다고. 어머니 역시 ‘일찍이 깬’ 분으로 자식 중 하나는 외국말을 가르쳐야 한다며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진씨를 화교학교로 진학시켰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를 화교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국제 결혼한 부부로 이들을 초대하는가 하면 심지어 몇년 전 한 스포츠신문에선 아예 ‘대만 출신 가수 진미령, 추석에 연변 위문공연’이라는 제목까지 뽑았다. 주민등록증은 있냐고 물어오는 사람은 부지기수.
진미령의 본명은 김미령이다. 어릴 땐 집에서 ‘미송이’로 불렸지만 가수데뷔를 하면서 그럴듯해 보이고 싶어 성을 바꿨다. 혜화국민학교를 나왔고 대만은 몇년 전에 처음 가본 ‘순수토종’이다.
화교학교 졸업 후 대만대학 유학을 준비하던 그가 ‘가수의 길’을 밟게 된 건 9월학기까지 기다리는 몇달 동안 소일삼아 노래나 배우려고 찾아간 작곡가 사무실에서였다. <벤> <마이 웨이> 등 올드팝을 분위기있게 잘 부르는 열아홉의 깜찍한 아가씨를 한 눈에 알아본 작곡가 장욱조씨는 그를 당시 잘나가던 흥행사에 연결해주었고 ‘내친 김에 좀 더’하는 마음으로 낸 데뷔곡 <잊지는 못할거야>(75년)가 히트를 하면서 예비유학생은 졸지에 인기가수로 떴다.
그해 연말 방송사의 신인상까지 받으면서 ‘건방진’ 신인가수 진미령의 연예계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에게 노래야 ‘몇번 부르다 말’ 일이었고 마음은 유학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프로의식 없는 프로’는 그 생활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짐을 꾸려 미국으로 가게 된다.
산타모니카 칼리지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며 낮에는 봉제공장에 나가 미싱을 밟던 몇년 동안 그가 깨달은 건 역설적으로 노래와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 돌아온 그는 달라져 있었고 그때의 깨달음이 지금까지 그의 직업적 자의식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제 그는 누가 물어도 당당히 대답한다. ‘가수 진미령’이라고.
좌우지간 편하게 살자구
요즘 진미령은 패러글라이딩에 빠져 있다. 얼마 전 배운 것인데 시간 나면 반찬 만들고 별미 찾아다니는 게 유일한 취미인 그에겐 최초의 ‘하드’한 관심사다. 집과 방송국과 쑥탕. 세 꼭지점의 바깥세계에 대해선 관심도 시간도 없이 단순하고 조용하게 살던 결혼 전과는 엄청 ‘와일드’해진 셈.
부부관계라는 건 자신이 가진 기본 위에서 서로에게 물어보고 배워가는 것이라고 전유성은 말한다. 한꺼번에 가르치며 살진 못한다는 걸 이해하면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편하게 사는 게 결혼생활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살 이유가 없죠.” 결혼해서 종종거리며 사는 건 상상해 본 일도 없다고 진씨는 말한다. 부엌데기 노릇이 마누라의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한다고.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니까 지켜주고, 혼자있고 싶다니까 놔주고, 부족한 부분은 챙겨주고… ‘내일 헤어져도 이 사람한테 기억되는 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여관이 아니면 글이 안나온다는 남편을 위해 골방을 치워 보리찻잔과 양은 주전자를 넣어주는가 하면 기분이 심상한 밤이면 부담없는 대작상대로 마주앉기도 하는 진씨는 남편이 한밤중에 일개 소대를 끌고 와도 이젠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부담이든 남편으로서의 의무든, 어떤 이유로도 함께 사는 상대를 ‘쪼지’ 않는 건 진씨의 철칙. ‘아, 가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해서 스스로 느끼고 행동하게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전유성은 얼마전 아내에게 ‘벤츠’를 사줬다. 지하철 애용자인 ‘전유성다움’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안다. “사주고 싶죠, 갖고 싶어하니까. 나야 뭐, 벤츠 타볼 생각은 한번도 안해보고 살았지만… 이렇게 미령이 덕분에 한번 얻어타보기도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평생 벤츠같은 거 타보겠어요?”
제비에 대한 꿈
고교 2학년인 제비는 주말이면 집에 온다. 빨리 시집가서 애 많이 낳고 살고 싶어하는 현모양처 지망생으로, 시집에 대학이 무슨 소용이냐며 일찌감치 상고에 원서를 집어넣은 ‘조숙한 숙녀’다.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친엄마가 미국에 있어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제비를 마음만큼 신경 써주지 못한 진씨로선 마음 ‘짠’할 때가 많지만 요즘 10대답게 ‘탄력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제비는 그런 것쯤 초연하다.
“제비여관에서 만들어서 제비야” “제비여관 주인 아저씨가 지어줬어,”
주변사람들한테 던져온 우스개와는 달리 전씨가 딸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데는 이유가 있다. 강남제비, 무슨 제비 이런 놀림을 받으면서 아이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고민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라는 뜻, 다른 사람과 틀린 시선, 자신만의 자의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였다. 제비가 작가나 시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심해서 지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제비에 대한 진미령의 원칙은 ‘친구처럼’. 부모다 자식이다 하는 거리를 애써 두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놔둔다고. 그 자신도 고교시절 주머니에 담배를 ‘꼬불쳐’ 넣어다니던 호기심 많은 여학생이기도 했다.
아빠를 빼박은 제비는 가끔씩 엉뚱한 얘기도 하지만 ‘될 성부른 떡잎’의 조짐도 이따금씩 보여 두 ‘노친네’를 흐뭇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6학년때 이미 서점에서 책 골라주는 아르바이트를 할만큼 독서광이어서 연예계에서 독서가로 알려진 아버지를 놀래킨다고. 가끔 진씨에게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며 떼도 쓴다. 자식의 의미를 진씨는 별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카들이 많아 제비는 북적거리는 사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진미령의 요리수첩에는 원칙적으로 흔한 음식은 없다. 더구나 패스트푸드는 금지품목. 그러나 한가지 예외가 있다. 햄버거다. 제비는 햄버거를 제일 잘 먹는다.
다람쥐같은 여자의 도토리 모으기
전유성의 살림이 피기 시작한 건 확실히 결혼 후부터다. 전화 한대도 안놓고 내 집도 없이 ‘설렁설렁’ 살아가던 전씨에게 경제감각을 깨우쳐 준 건 아내 진미령의 몫. 결혼 이후 두사람의 활동은 각자 더 활발해져 살림규모도 커졌다.
KBS, MBC, SBS를 모두 합쳐 한사람 앞에 세개씩 있는 통장은 진씨가 일절 건드리지 않는 품목. 그녀가 만지는 건 큰 돈(전유성의 책 인세와 광고출연료, 가게 ‘학교종이 땡땡땡’ 수입)이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제비 학비며 생활비, 남편 용돈 등으로 다 알아서 쓰게 하고 뭉칫돈은 철저히 그녀 관할.
‘남들이 듣기에는’ 통장에 손도 안대는 멋진 아내 같지만 카드 요금, 핸드폰 요금 따위를 모두 자동이체로 걸어놨기 때문에 돈관념 없는 전씨가 ‘실수’할 여지는 제도적으로 봉쇄돼있다. 지출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편이지만 지난해 겨울 남편이 동료연예인들에게 컴퓨터 무료강습을 해주려고 오피스텔을 임대할 땐 흔쾌히 지원을 했다. 컴퓨터 책 인세로 술턱을 내는 대신 교육을 하겠다는 남편 생각이 건실하다고 느꼈기때문이다.
진미령 역시 결혼 이후에야 ‘돈관리’에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다. 인사동 찻집 ‘학교종이 땡땡땡’도 그런 재테크의 산물. 말년 대책으로 시작한 이 가게는 공방으로 쓰던 가게가 나자마자 ‘일 저지르는 기분’으로 진씨가 인수했는데 장사가 잘 되는 바람에 이들 부부의 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의 52평 아파트도 비록 전세지만 진미령의 매운 손으로 장만한 것.
우리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기
“결혼 때 약속했어요. 우리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자, 좀 놀면서 세상을 살자고. 처음 가보는 곳은 꼭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방송가를 뒤집어놓은 두사람의 유럽배낭여행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몇년씩 미뤄오다가 독한 마음 먹고 떠나 무려 1백3일씩이나 유럽을 훑고 온 것이다.
밤기차에서 학생들과 함께 구겨자고, 돈 아끼려고 바케트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40시간 동안 완행열차에 시달린 경험은 의미심장했다. 진씨로선 긴 여행을 해보고 결혼하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결혼 전 가졌던 ‘어쩐지 살다가 점점 친해질 것같은 느낌’의 남편과 실제로 한뼘은 더 가까워졌다.
내년 봄이나 여름쯤 이들은 아프리카로 다시 떠날 예정이다. 낙타도 사고 짐꾼도 사서 사하라를 횡단한 다음 내륙을 돌 계획. ‘아이가 없으니 우리야 언제나 신혼’이라는 진씨의 말처럼 긴 인생 여행의 마지막까지, 이들이 함께 할 굽이굽이의 길목을 지켜보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