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길 다른길] 가수 신기철 vs 국회의원 신기남
페이지 정보
작성자 starnstar작성일03-11-04 12:27 조회74,217회 댓글0건
관련링크
본문
가수와 정치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선 한가지다.
변호사를 거쳐 재선 의원에 ‘여권 주류(主流)’ 수식어가 붙은 신기남 (辛基南·52) 의원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정치인이겠고, 34년 노래인생에서 번듯한 곡을 각인시킨 적 없는 그의 형 신기철 (辛基哲·51)씨는 여전히 성공을 꿈꾸는 ‘원로 신인가수’다.
“성격도, 걸어온 길도, 극과 극이었죠.”(아우)
“그러니까 친구처럼 지내왔지.”(형)
“성량 좋겠다, 격조있는 ‘클래시컬 트로트’ 부르겠다, 히트곡만 내면 되는데….”(아우)
“이번 앨범은 완전 ‘띵까띵까’로 갈 걸 그랬어.”(형)
“순전히 내 책임이야. 트로트 곡에다 너무 고상한 가사를 붙여줘서 그런 거 아닌가? 하하.”(아우)
신 의원은 지난주 형이 낸 7집 음반 수록곡 대부분을 작사했다. “다른 가수들 가사는 쓸 계획조차 없어요.
형 덕에 저작권료 챙기는 ‘신기철 전속 작사가’라니까요.”(아우)
둘이서 종종 술을 마시는데 둘 다 주량이 제법 되요.”(형) “
오죽하면 새 앨범 타이틀 곡이 ‘술이란’이겠어.”(아우)
연년생 형제는 노래 장단 맞추듯 얘기를 이어갔다. 덩치 좋은 중년의 두 사내는 ‘인기 가수’를 향한 욕망과는 여유로운 거리를 둔 듯했다.
“실력이나 정열이 모자란 게 아니거든요. 좋아서 부르는 노래인데, 돈 써가며 홍보할 것도, 유행가 만드는 데 한 맺힌 것도 아니죠.
” 신 의원은 ‘형은…’으로 시작해도 좋을 말머리에 ‘우리는…’을 달곤 했다.
신 의원이 “우리는 돈 몇 푼 더 벌기보다 아마추어리즘을 지키려 해요”라고 하자, 기철씨는 “레스토랑·한식당·양복점 별별 장사 다해봤어도, 밤무대 뛴 적은 없잖아. TV·라디오에도 출연해 알아보는 이들도 많아졌고”라고 맞장구쳤다.
기철씨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 신 의원은 태권도 3단으로 운동신경만큼은 통했지만, 형은 늘 바깥일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 들어오면 형제들 모두 책상 앞에 틀어박혀 있어요. 놀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밖으로 돌았죠.”
‘KS’(경기고·서울법대)인 신 의원과 대조적으로, 기철씨는 고교만 6곳을 옮겨 다녔다.
그의 ‘과거’를 듣고 싶었는데, 그는 “옛날 얘기는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 때문에 조바심이나 열등감 느낀 적은 없어요.” 턱을 괸 채 형을 바라보던 신 의원이 말한다.
“하고 싶은 사업 다 해보고, 평생 직업(가수) 갖고…. 자유인으로 사는 형이 부럽기 짝이 없다니까요.”
형제는 생의 전기(轉機)마다 서로에게 힘이 됐다.
기철씨가 중앙대 재학 중인 69년 데뷔 이후 음반을 낼 때마다 동생은 노랫말을 댔고, 신 의원이 96년 정계 입문을 두고 고심할 때 형은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모친(79)께서 장남이 ‘가수 되겠다’고 했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더니만, 제가 ‘출마하겠다’고 하자 노발대발하시더라고요.”
한 세월을 별렀을 법한 형에 대해, 동생의 바람은 이랬다.
“속 깊고 철학 있고 모두에게 삶의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성숙한 가수, 느리게 가더라도 국민가수가 됐으면 해.”
기철씨는 “동생이 더 강단을 보였으면 좋겠고, 속도 내야 할 때 확실히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말했다.
신 의원은 “남의 속도 모르고 ‘속도 속도’ 한다”고 농을 쳤고, 둘은 또 소리 없이 웃었다.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