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꾸준한 인기몰이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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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04-02-17 03:11 조회55,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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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다.
댄스그룹 거북이(터틀맨 금비 지이)가 그렇다.
춤과 외모가 특출날 것 없고 특별히 세련된 음악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은 한두번만 들으면 기억에 쏙 남는 멜로디와 신나는 리듬, 직설적인 내용을 담은 재미난 가사가 강점이다.
쉬운 멜로디는 유치해지기 쉽고 신나는 리듬은 금세 식상해지며 직설적인 가사는 여운이 적어 깊은 맛을 간직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함께 갖고 있다.
거북이는 이 세가지 함정을 래퍼 터틀맨(30·본명 임성훈)과 지이(24·이지희)의 파워넘치는 목소리와 리드보컬 금비(22·손연옥)의 고음을 적절하게 교차 배합해 피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컴온(Come On)’은 주술처럼 팬들을 끌어모았다. 요즘은 ‘왜 이래’로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거북이의 탄생
지금은 높은 인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거북이의 옛날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7년 거북이는 작곡가 이범희씨의 작업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터틀맨이 중심이 돼 남녀 5명으로 구성된 ‘파티 애니멀스’라는 그룹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소속사가 부도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듬해 터틀맨은 지금의 멤버인 지이와 만나 남녀 혼성 4인조로 다시 팀을 꾸렸다. 서울 용산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내고 4평 남짓한 공간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거북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음악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그해에는 기업체에서 여는 소규모 가요제, 지방 가요제, 케이블TV 가요제가 많아져 거북이가 무대에 자주 설 수 있었다.
2000년 ‘힙합’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그들의 노래를 수록하게 됐고 이듬해에도 역시 컴필레이션 앨범 ‘힙합매니아’에 참여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에는 3인조로 축소돼 꿈에 그리던 정식 데뷔앨범 ‘고우 부기’를 발표하게 됐다.
처음에는 반응이 잠잠해 마음을 끓이고 있는데 ‘사계’가 월드컵 열풍 속에 뒤늦게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의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했던 당시의 히트곡을 댄스곡으로 바꾼 색다른 시도는 월드컵 열풍에 따른 집단 축제의 현장에서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사계’는 없어질지도 모를 그룹을 살렸다. 이때 거북이는 히트라는 단맛을 처음으로 맛봤다.
하지만 끝난 것 같았던 시련은 또 찾아왔다. 수익금 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소속사와 갈등을 빚는가 하면 정들었던 멤버들이 떠나는 등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거북이는 위기에 빠졌다. 5년 만에 빛을 본 그룹이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지난해 4월에 새롭게 여성 보컬 금비를 보강하고 앨범작업을 했지만 2집앨범 발표시기는 계속해서 늦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10월이 돼서야 겨우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됐고 그 다음달에 앨범을 내게 됐다.
◇거북이의 음악
데뷔앨범을 만들 때 ‘거북이가 스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거북이에게 곡을 줄 수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주변에서 들었던 터틀맨은 결국 자신의 곡으로 2집앨범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요즘 댄스음악계에서 하나의 유행을 형성한 ‘거북이표 댄스뮤직’을 탄생시켰다.
터틀맨은 “가요계가 너무 흑인 음악 쪽으로 치우치고 있잖아요. 우리도 댄스곡에다 랩을 좀 섞었더니 대뜸 힙합그룹이라는 호칭이 붙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냥 우리는 댄스음악을 할 뿐인데요”라며 가요계의 ‘편식’과 흑인 음악을 최고의 지향점으로 삼는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또 “미국에 가본 적도 없고 친구 중에 흑인도 없다”며 “트로트가 한국적인 정서잖아요. 거기에 댄스음악의 빠른 템포를 집어넣어서 거북이 음악을 만든 거예요”라며 힙합과의 거리를 확실하게 뒀다.
2월에만 27곳서 오리엔테이션 무대 섭외를 받았다.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스타덤을 향해 가고 있는 거북이다. 거북이는 “어려운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편견을 버리라”며 “댄스음악은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댄스그룹 거북이(터틀맨 금비 지이)가 그렇다.
춤과 외모가 특출날 것 없고 특별히 세련된 음악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은 한두번만 들으면 기억에 쏙 남는 멜로디와 신나는 리듬, 직설적인 내용을 담은 재미난 가사가 강점이다.
쉬운 멜로디는 유치해지기 쉽고 신나는 리듬은 금세 식상해지며 직설적인 가사는 여운이 적어 깊은 맛을 간직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함께 갖고 있다.
거북이는 이 세가지 함정을 래퍼 터틀맨(30·본명 임성훈)과 지이(24·이지희)의 파워넘치는 목소리와 리드보컬 금비(22·손연옥)의 고음을 적절하게 교차 배합해 피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컴온(Come On)’은 주술처럼 팬들을 끌어모았다. 요즘은 ‘왜 이래’로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거북이의 탄생
지금은 높은 인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거북이의 옛날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7년 거북이는 작곡가 이범희씨의 작업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터틀맨이 중심이 돼 남녀 5명으로 구성된 ‘파티 애니멀스’라는 그룹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소속사가 부도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듬해 터틀맨은 지금의 멤버인 지이와 만나 남녀 혼성 4인조로 다시 팀을 꾸렸다. 서울 용산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내고 4평 남짓한 공간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거북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음악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그해에는 기업체에서 여는 소규모 가요제, 지방 가요제, 케이블TV 가요제가 많아져 거북이가 무대에 자주 설 수 있었다.
2000년 ‘힙합’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그들의 노래를 수록하게 됐고 이듬해에도 역시 컴필레이션 앨범 ‘힙합매니아’에 참여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에는 3인조로 축소돼 꿈에 그리던 정식 데뷔앨범 ‘고우 부기’를 발표하게 됐다.
처음에는 반응이 잠잠해 마음을 끓이고 있는데 ‘사계’가 월드컵 열풍 속에 뒤늦게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의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했던 당시의 히트곡을 댄스곡으로 바꾼 색다른 시도는 월드컵 열풍에 따른 집단 축제의 현장에서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사계’는 없어질지도 모를 그룹을 살렸다. 이때 거북이는 히트라는 단맛을 처음으로 맛봤다.
하지만 끝난 것 같았던 시련은 또 찾아왔다. 수익금 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소속사와 갈등을 빚는가 하면 정들었던 멤버들이 떠나는 등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거북이는 위기에 빠졌다. 5년 만에 빛을 본 그룹이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지난해 4월에 새롭게 여성 보컬 금비를 보강하고 앨범작업을 했지만 2집앨범 발표시기는 계속해서 늦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10월이 돼서야 겨우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됐고 그 다음달에 앨범을 내게 됐다.
◇거북이의 음악
데뷔앨범을 만들 때 ‘거북이가 스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거북이에게 곡을 줄 수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주변에서 들었던 터틀맨은 결국 자신의 곡으로 2집앨범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요즘 댄스음악계에서 하나의 유행을 형성한 ‘거북이표 댄스뮤직’을 탄생시켰다.
터틀맨은 “가요계가 너무 흑인 음악 쪽으로 치우치고 있잖아요. 우리도 댄스곡에다 랩을 좀 섞었더니 대뜸 힙합그룹이라는 호칭이 붙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냥 우리는 댄스음악을 할 뿐인데요”라며 가요계의 ‘편식’과 흑인 음악을 최고의 지향점으로 삼는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또 “미국에 가본 적도 없고 친구 중에 흑인도 없다”며 “트로트가 한국적인 정서잖아요. 거기에 댄스음악의 빠른 템포를 집어넣어서 거북이 음악을 만든 거예요”라며 힙합과의 거리를 확실하게 뒀다.
2월에만 27곳서 오리엔테이션 무대 섭외를 받았다.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스타덤을 향해 가고 있는 거북이다. 거북이는 “어려운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편견을 버리라”며 “댄스음악은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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