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애 - 중년의 사랑과 꿈을 노래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05-12-12 12:34 조회114,951회 댓글0건
관련링크
본문
“… 록 그룹 활동을 정리한 것은 아쉽지만,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 비로소 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록 그룹의 싱어로 음악계에 입문한 가수 오영애
“날씨가 꽤 춥네요 (웃음)”
처음 음반을 내놓는 신인 가수에게는 특유의 긴장감이, 오랜 활동을 거친 가수는 다분히 언론을 의식하는 꾸며짐이 드러나는 법인데, 반갑게 인사를 청하는 신인가수 오영애씨에게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편안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오래지 않아 필자는 이런 편안함이 화려한 무대보다도 무대 뒤에서 흘린 땀을 더 소중히 여기고, 카메라에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무대를 더욱 사랑하는 이들의 전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수 오영애씨는 트로트 가수로서 첫 방송 음반을 내놓은 ‘신인’이지만, 데뷔 이전,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음악인이었다.
그녀는 여느 여성 트로트 가수와는 달리 록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처음 음악계와 인연을 맺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여성 2명, 남성 5명으로 구성된 오영애의 보컬 그룹은 지난 10여 년간 전국 각지의 공연 무대는 물론, 클럽과 라이브 카페 무대를 누비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손꼽히는\' 그룹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룹의 보컬리스트로서 폭발적인 성량과 뛰어난 감성으로 갈채를 받아왔던 오영애씨는 탁월한 가창력을 인정받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공연팀에 발탁되면서 1년여 동안 신중현 콘서트 투어 무대에서 보컬로서 맹활약하기도 한다.
한국의 록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서보고 싶을 법한 \'꿈의 무대\'일텐데 그녀는 이 대목에서 애써 손사래를 치며 자세한 얘기는 밝히지 않았다.
\"...선생님(신중현씨)은 워낙에 큰 분이신데, 행여라도 누가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누구의 명성에 기대기보다는 제 실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그러나, 이후 그녀가 이야기하는 한국 록의 현실은 참 냉담했다.
1년 가량 이어진 신중현 콘서트 투어가 대중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하고 종결되면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오영애씨도 록 그룹 생활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층들한테는 록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록 음악을 한다는 것은...참 배고픈 일이에요. 선생님(신중현씨)도 두 손을 들 정도였으니... 선생님이 콘서트 투어를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더 이상 그룹 활동을 계속할 의욕이 없어지고 말았어요\"
10여 년 간의 록 그룹 활동을 정리하던 당시를 회상하는 오영애씨의 표정에서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역력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록 그룹을 못하게 되어서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음)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 결심하면서 비로소 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느꼈으니까요.”
작곡가의 표현대로 오영애는 \'이미 준비된 가수\'였다.
오랜 록그룹 활동을 거치며 다져진 성량과 테크닉은 단연 발군이었고, 무대를 통해 익혀온 감성과 끼는 여느 트로트 가수에게서 느끼기 힘든 신선함이 있었다.
트로트 가수로 제 2의 인생을 열다.
그룹 활동을 정리한 오영애씨는 몇 개월의 공백기간을 거치면서 성인가요 가수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되었다. 록 뮤지션 특유의 프라이드를 생각하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법 하다.
\"처음 음악할 때만 해도 록 음악에 워낙 심취를 하다보니, 록 만이 전부인 줄 알았고, 다른 음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던 시절이 있었어요 (웃음), 그런데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고 나니,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트로트 만한 음악이 없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어요\"
록 그룹 시절, 무대에서 우연히 몇 곡의 트로트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받았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당시에 무대에서 받았던 전율은 지금의 그녀가 트로트 가수로 돌아서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의 \'트로트 예찬\'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 나라의 모든 음악에는 많건 적건 트로트 적인 필(Feel)이 들어있어요.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촌스럽다 유치하다 깎아 내리는 트로트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음악을 그렇게 감싸 안고 있었던 것이죠. 트로트 음악의 매력을 접하고 나서는, 트로트 음악을 한번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제대로 불러봐야겠다...라는 욕심을 갖게 되었어요.\"
결심을 굳힌 오영애는 중견 작곡가 조동산, 김창호와 함께 솔로 가수로서 첫 번째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작곡가의 표현대로 오영애는 \'이미 준비된 가수\'였다.
오랜 록그룹 활동을 거치며 다져진 성량과 테크닉은 단연 발군이었고, 무대를 통해 익혀온 감성과 끼는 여느 트로트 가수에게서 느끼기 힘든 신선함이 있었다.
또한 다른 트로트 가수와는 달리 기타와 드럼, 키보드 등의 악기를 두루 다룰 줄 아는 모습 은 오랜 시절 쌓아온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 그 중에서도 그룹 활동 중 리듬감을 잃지 않기 위해 따로 연마했다는 드럼 실력은 가히 프로 수준급이라고.
현재 방송 전파를 타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뷔곡
\'뭐라고 그랬어\'는 스윙 리듬 특유의 흥겨움과 브라스의 신선함이 인상적인 블루스 풍의 세미 트로트 곡.
블루스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에서부터 호소력 짙은 고음까지 유연하게 담아낸 오영애의 보컬이 단연 일품이다
스윙, 재즈, 록 등을 자연스레 담아낸 데뷔 앨범
\'간데요 글쎄(이태호)\', \'고향이 남쪽이랬지 (송대관)\' 등 서정적인 트로트 곡을 히트시켜온 조동산을 통해 오영애는 트로트 특유의 토속적인 정서와 깊이있는 창법을 겸비하였다.
또한 \'DMZ\' 등 록과 댄스 등이 가미된 세미 트로트 곡으로 타고난 센스를 인정받고 있는 작곡가 김창호는 이번 앨범에서 \'뭐라고 그랬어\', \'무욕의 사랑\' 등의 곡을 통해 오영애의 다채로운 음악성을 한껏 돋보이게 하였다.
현재 방송 전파를 타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뷔곡 \'뭐라고 그랬어\'는 흥겨운 스윙 리듬이 인상적인 블루스 풍의 세미 트로트 곡. 블루스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에서부터 호소력 짙은 고음까지 유연하게 담아낸 오영애씨의 보컬이 단연 일품이다.
방송보다도 노래교실에서 먼저 사랑받고 있다는 후속곡 \'갔다와\' 역시 눈길을 끈다. 조동산 특유의 구슬픈 멜로디도 훌륭하지만, ‘뭐라고 그랬어’와는 또 다르게 곡에 담겨 있는 깊은 정한(情限)을 잔잔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해낸 오영애씨의 역량을 접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음악만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드리는 오영애가 되겠습니다…”
음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조그마한 실천
향후 활동계획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오영애씨가 현재 하고 있는 자선 공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오영애씨는 그룹 활동 시절부터 현재까지 매년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 콘서트\'를 열고 있다. 오는 12월 13일에도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소아암 환자 돕기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소아암 환자 돕기 콘서트\' 이외에도 오영애씨는 1년에 두 번씩 서울 보훈 병원에서 장애군인과 원호 대상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수시로 기회가 잡히면 바쁜 일정을 팽개치고서라도 양로원과 고아원, 불우이웃돕기 공연에 달려간다.
\"제가 유명한 가수도 아니고 가진 것은 없지만, 힘들고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나누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은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제 노래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음악만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 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 드리는 오영애가 되겠습니다. (웃음)”
록 그룹의 싱어로 음악계에 입문한 가수 오영애
“날씨가 꽤 춥네요 (웃음)”
처음 음반을 내놓는 신인 가수에게는 특유의 긴장감이, 오랜 활동을 거친 가수는 다분히 언론을 의식하는 꾸며짐이 드러나는 법인데, 반갑게 인사를 청하는 신인가수 오영애씨에게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편안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오래지 않아 필자는 이런 편안함이 화려한 무대보다도 무대 뒤에서 흘린 땀을 더 소중히 여기고, 카메라에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무대를 더욱 사랑하는 이들의 전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수 오영애씨는 트로트 가수로서 첫 방송 음반을 내놓은 ‘신인’이지만, 데뷔 이전,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음악인이었다.
그녀는 여느 여성 트로트 가수와는 달리 록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처음 음악계와 인연을 맺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여성 2명, 남성 5명으로 구성된 오영애의 보컬 그룹은 지난 10여 년간 전국 각지의 공연 무대는 물론, 클럽과 라이브 카페 무대를 누비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손꼽히는\' 그룹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룹의 보컬리스트로서 폭발적인 성량과 뛰어난 감성으로 갈채를 받아왔던 오영애씨는 탁월한 가창력을 인정받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공연팀에 발탁되면서 1년여 동안 신중현 콘서트 투어 무대에서 보컬로서 맹활약하기도 한다.
한국의 록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서보고 싶을 법한 \'꿈의 무대\'일텐데 그녀는 이 대목에서 애써 손사래를 치며 자세한 얘기는 밝히지 않았다.
\"...선생님(신중현씨)은 워낙에 큰 분이신데, 행여라도 누가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누구의 명성에 기대기보다는 제 실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그러나, 이후 그녀가 이야기하는 한국 록의 현실은 참 냉담했다.
1년 가량 이어진 신중현 콘서트 투어가 대중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하고 종결되면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오영애씨도 록 그룹 생활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층들한테는 록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록 음악을 한다는 것은...참 배고픈 일이에요. 선생님(신중현씨)도 두 손을 들 정도였으니... 선생님이 콘서트 투어를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더 이상 그룹 활동을 계속할 의욕이 없어지고 말았어요\"
10여 년 간의 록 그룹 활동을 정리하던 당시를 회상하는 오영애씨의 표정에서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역력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록 그룹을 못하게 되어서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음)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 결심하면서 비로소 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느꼈으니까요.”
작곡가의 표현대로 오영애는 \'이미 준비된 가수\'였다.
오랜 록그룹 활동을 거치며 다져진 성량과 테크닉은 단연 발군이었고, 무대를 통해 익혀온 감성과 끼는 여느 트로트 가수에게서 느끼기 힘든 신선함이 있었다.
트로트 가수로 제 2의 인생을 열다.
그룹 활동을 정리한 오영애씨는 몇 개월의 공백기간을 거치면서 성인가요 가수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되었다. 록 뮤지션 특유의 프라이드를 생각하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법 하다.
\"처음 음악할 때만 해도 록 음악에 워낙 심취를 하다보니, 록 만이 전부인 줄 알았고, 다른 음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던 시절이 있었어요 (웃음), 그런데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고 나니,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트로트 만한 음악이 없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어요\"
록 그룹 시절, 무대에서 우연히 몇 곡의 트로트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받았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당시에 무대에서 받았던 전율은 지금의 그녀가 트로트 가수로 돌아서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의 \'트로트 예찬\'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 나라의 모든 음악에는 많건 적건 트로트 적인 필(Feel)이 들어있어요.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촌스럽다 유치하다 깎아 내리는 트로트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음악을 그렇게 감싸 안고 있었던 것이죠. 트로트 음악의 매력을 접하고 나서는, 트로트 음악을 한번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제대로 불러봐야겠다...라는 욕심을 갖게 되었어요.\"
결심을 굳힌 오영애는 중견 작곡가 조동산, 김창호와 함께 솔로 가수로서 첫 번째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작곡가의 표현대로 오영애는 \'이미 준비된 가수\'였다.
오랜 록그룹 활동을 거치며 다져진 성량과 테크닉은 단연 발군이었고, 무대를 통해 익혀온 감성과 끼는 여느 트로트 가수에게서 느끼기 힘든 신선함이 있었다.
또한 다른 트로트 가수와는 달리 기타와 드럼, 키보드 등의 악기를 두루 다룰 줄 아는 모습 은 오랜 시절 쌓아온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 그 중에서도 그룹 활동 중 리듬감을 잃지 않기 위해 따로 연마했다는 드럼 실력은 가히 프로 수준급이라고.
현재 방송 전파를 타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뷔곡
\'뭐라고 그랬어\'는 스윙 리듬 특유의 흥겨움과 브라스의 신선함이 인상적인 블루스 풍의 세미 트로트 곡.
블루스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에서부터 호소력 짙은 고음까지 유연하게 담아낸 오영애의 보컬이 단연 일품이다
스윙, 재즈, 록 등을 자연스레 담아낸 데뷔 앨범
\'간데요 글쎄(이태호)\', \'고향이 남쪽이랬지 (송대관)\' 등 서정적인 트로트 곡을 히트시켜온 조동산을 통해 오영애는 트로트 특유의 토속적인 정서와 깊이있는 창법을 겸비하였다.
또한 \'DMZ\' 등 록과 댄스 등이 가미된 세미 트로트 곡으로 타고난 센스를 인정받고 있는 작곡가 김창호는 이번 앨범에서 \'뭐라고 그랬어\', \'무욕의 사랑\' 등의 곡을 통해 오영애의 다채로운 음악성을 한껏 돋보이게 하였다.
현재 방송 전파를 타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뷔곡 \'뭐라고 그랬어\'는 흥겨운 스윙 리듬이 인상적인 블루스 풍의 세미 트로트 곡. 블루스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에서부터 호소력 짙은 고음까지 유연하게 담아낸 오영애씨의 보컬이 단연 일품이다.
방송보다도 노래교실에서 먼저 사랑받고 있다는 후속곡 \'갔다와\' 역시 눈길을 끈다. 조동산 특유의 구슬픈 멜로디도 훌륭하지만, ‘뭐라고 그랬어’와는 또 다르게 곡에 담겨 있는 깊은 정한(情限)을 잔잔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해낸 오영애씨의 역량을 접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음악만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드리는 오영애가 되겠습니다…”
음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조그마한 실천
향후 활동계획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오영애씨가 현재 하고 있는 자선 공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오영애씨는 그룹 활동 시절부터 현재까지 매년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 콘서트\'를 열고 있다. 오는 12월 13일에도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소아암 환자 돕기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소아암 환자 돕기 콘서트\' 이외에도 오영애씨는 1년에 두 번씩 서울 보훈 병원에서 장애군인과 원호 대상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수시로 기회가 잡히면 바쁜 일정을 팽개치고서라도 양로원과 고아원, 불우이웃돕기 공연에 달려간다.
\"제가 유명한 가수도 아니고 가진 것은 없지만, 힘들고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나누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은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제 노래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음악만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 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나누어 드리는 오영애가 되겠습니다. (웃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